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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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어린이 같지 않으면

성경 : 마가복음 10,13-16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14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노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16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하여 주셨다.

 

들어가며 : 5월 1일은 메이데이, 흔히 노동절이라고 합니다. 그 유래는 미국의 노동운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국가권력과 결탁하여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독점기업에 대항하기 위해 1886년 5월 1일 하루 8시간 노동을 위해 총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이 파업에서 경찰의 발포로 어린 소녀를 포함한 노동자 6명이 사망했고 다음날 격분한 노동자 30만 명이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집회를 열었습니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9년 7월 파리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설립대회에서는 미국 노동자의 8시간 노동을 위한 상황을 보고받고, 1890년 5월 1일을 '노동자 단결의 날'로 정하여 8시간 노동쟁취를 위해 세계적인 시위를 결의하여 메이데이는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과시하는 국제적 기념일로 정하여 이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노동절은 노동자의 계급투쟁적 성격을 반영하여 제정된 날인데 우리나라는 이런 계급적 의미를 제거하고 근로자의 날이라는 시혜적인 반공휴일로 변질시켰습니다. 일하는 것이 저주가 아니라 희망이고 당연한 것이며 하나님이 정하신 순리라는 것을 깨닫고 기쁨과 감사로 노동하면서도 그 어떤 노동착취의 구조에 대해서는 반대할 줄 아는 노동자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취지로 지난 1일에 노동절 야유회를 잘 다녀왔습니다. 건강하게 노동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복이 함께 하시기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주일이라니까 새삼스럽게 한번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제가 미혼자라면 참으로 은혜스럽게 잘 꾸며서 어린이를 미화하며 설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극성스러운 두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이다보니 어린이를 미화하며 어린이가 천국의 주인이라는 것을 설교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어제도 한바탕 쇼를 했습니다. 오전에 아내가 친정에 가는데 가기 전에 아이들에게 가정학습 보고서인가 다 써라, 쓰지 않으면 안 데리고 간다고 했는데 큰 아이는 허겁지겁 다 썼지만 작은 아이가 어떻게 쓰느냐고 마음이 급해가지고 울기만 하다가 결국 혼자 집에 남겨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형과 엄마가 집을 떠난 후에 정신이 번쩍들었는지 다 썼다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만 이미 떠나간 버스요, 흘러간 강물이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을 아직 잘 못합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울면서 엄마를 찾고 심통을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좀 안스러워서 천 원짜리 한 장을 주면서 가게에 가서 원하는 과자를 사먹으라고 했더니만 어느새 얼굴이 환해져가지고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내려와서는 돈을 받아 들며 고맙습니다 하고 꾸뻑 인사까지 합니다. 어린이날이라고 미리 준비해둔 자동차 경주 장난감을 저녁에 꺼내주었더니 아이들이 180도로 달라져 해맑은 눈을 가진 천사의 모습으로 돌변하면서 말도 꼬박꼬박 잘 듣고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사실 이런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계속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는 부분이 이 구절입니다. 사실 아직도 확실하게 깨닫지를 못하겠습니다. 8세, 10세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써는 더더욱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고 성경을 보면서 어린이라고 하면 순진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갓난아기의 모습만 떠오릅니다. 천방지축 개구쟁이, 사고뭉치이고 한번 떼를 쓰면 꼭지가 돌아가게 하고 결국 회초리를 들어 때린 사람 마음까지 더럽게 만들기가 일쑤인 이런 녀석들이 천국의 주인이라며… 천국에 가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고 했던가요? 어린아이를 보면서 그들의 모습에 우리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원하기는 하지만 집착하지는 않습니다. 갖고 싶어 하기는 하지만 탐욕을 부리지는 않습니다. 후회는 하지만 매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소위 성인이라는 우리들은 집착하고 탐욕을 부리고 매이고 들러붙어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 말은 어린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라는 말보다는 어른들은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어린이들을 유심히 보니 갖고 싶다고 아빠를 조르다가도 다른 장난감 가지고 놀기에 마음이 팔리면 조르기를 그치고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집중합니다. 갖고 싶다고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든지 손에 넣으려고 안달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하지 않고 곧 포기하고 까맣게 잊을 줄도 압니다. 잘못한 일로 꾸중을 듣고 회초리를 맞아 반성하고 후회하지만 그 일로 부모에게 앙심을 품거나 원한을 가슴에 묻어두고 저주하거나 마음의 상처로 품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렇게 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어린이들은 단순하고 순진한 마음씨로 인해 천국에 가겠지만 어른들은 과도한 탐욕과 집착, 그리고 여기저기 매이고 종되고 노예된 일이 많아서 천국에 가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도 참 능글능글한 어른들 틈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다들 나름대로 계산속으로 따라다니며 예수님이 한탕 하실 날만 기다리고 있던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으셨던 분이 단순하고 소박하고 잔계산 없이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포기할 줄도 알고 집착하지 않으며 재미 있게 놀기 좋아하는 어린이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 그 마음이 편안해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나라를 받든다는 것은 말끝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떠들고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성품으로 그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이 아닐까 하고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각은 열이면 열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생각이고 하나님 나라는 이미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맘에 들건 맘에 들지 않건 이미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은 거기가 어떤 곳이든지 간에 거기에서 재미있게 잘 놀겠지만 어른들은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불평불만을 해대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해대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떠받드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살기에 적당한 성품도 아닐 것입니다.

어린이들을 대하는 어른들, 우리 아들들을 대하는 나의 자세만 보더라도 참 문제가 많습니다. 순수하고 순진하고 솔직하고 꾸밈 없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부정하고 그들을 자꾸 나처럼 때묻고 계산적이고 적당히 가식적이면서 거짓말에 익숙한 모습으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을 내 자신에게서 너무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육이라는 것이 어린이들의 순수함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어른의 때묻고 계산적이며 가식적인 세계관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결국은 지켜주는 교육이 아니라 망가뜨리는 교육이 돼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적당히 망가진 모습을 보면서 잘한다, 똑똑하다, 영민하다, 앞가림을 잘 하겠다 등등으로 칭찬하고 부추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린이들을 물리적으로도 괴롭히고 상처주는 것 역시 어른들입니다. 이념적, 종교적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가장 많이 목숨을 잃는 것이 약자들, 특히 어린이들입니다. 세계가 돈지랄에 미쳐서 양곡가격을 유지하려고 멀쩡한 곡식을 태평양에 쏟아 부을 때도 가장 많이 기아로 쓰러져 목숨을 잃는 것도 결국 어린이들입니다. 하루에 20시간씩 저임금으로 노동을 착취당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시키는 대로 다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어린이들입니다. 요즘은 어린이 성추행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당한 성적 추행의 상처는 한 사람의 일생을 심하게 일그러뜨립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어른들이 세운 탐욕이라는 십자가에 매달리는 어린양이 바로 어린이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어린이들의 모습에서 고난의 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의 모습을 발견하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이주일인데 어린이 예찬하고 어린이 얘기를 많이 하지 못하고 어른 얘기만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 이야기가 어떤 맥락인지, 그리고 정말 어린이를 복되게 하신 말씀인지 아니면 우회적으로 어른들의 삶의 모습들을 비판하신 건지. 그러나 어쨌건 성서를 통해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나가며 : 어린이들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진지하게 비추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건전하게 씩씩하고 개성 있게 자라날 수 있도록 이 세계를 바꾸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주시는 여러분이 돼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린이들이 미래를 꿈꾸며 오늘을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와 어른은 이미 한 운명인 셈이지요. 어린이 주일에 어린이를 통해 어린이를 축복하고 또 우리 자신이 깨달음을 얻고 삶의 방식을 단순하고 소박하며 솔직하게 변화시키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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