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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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령충만 하십시오(2) - 거룩한 분노


성경 : 사무엘상 11:5-7

5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백성이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야베스에서 온 전령들이 한 말을 그에게 일러주었다. 6 이 말을 듣고 있을 때에,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세차게 내리니, 그가 무섭게 분노를 터뜨렸다. 7 사울은 겨릿소 두 마리를 잡아서 여러 토막으로 자른 다음에, 그것을 전령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스라엘 모든 지역으로 말을 전하라고 보냈다. "누구든지 사울과 사무엘을 따라나서지 않으면, 그 집의 소들도 이런 꼴을 당할 것이다." 주님께서 온 백성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시니, 모두 하나같이 그를 따라나섰다.

 

들어가며 : 아버님 생신이라 지난 금요일에 강원도 인제에 다녀왔습니다. 칠순인데 딱히 해드릴 수 있는 것도 없고 해서 형제들-형제들이래야 겨우 저희 부부와 제 여동생 부부인데-이 식사 한 끼 대접해 드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겸사겸사 농사일 하시는 것 도와드리자고 하루 일찍 가서 고추밭에 고춧대 세우는 것 조금 도왔습니다. 고추 심은 것 중간중간에 쇠파이프를 중망치로 박아 세우는 것인데 올해는 고추를 조금 적게 심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쇠파이프를 중망치로 박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내가 잡고 제가 박았는데 손목이 시큰거리고 망치를 쥔 손이 덜덜 떨리더군요.

일을 하면서 노인네 둘이서 산골에서 이게 무슨 고생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이 미치자 사실 제가 더 불쌍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울이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 무생물 속에서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지 못하며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면서 생명의 존귀함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경쟁의 달음질에 앞만 보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생명의 삶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생명을 가꾸고 일구며 결실을 맺게 하는 생명노동을 땀 흘리며 하고 와서인지 마음이 가볍습니다.

생명 없는, 반생명의 척박한 이 땅에서도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생명을 그 안에 모시고 살아간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님들에게도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우리는 지금 성령강림절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성령은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고 또 설교 주제입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해마다 한두 차례씩 꼭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부흥회입니다. 그 부흥회의 주제로 자주 설교되는 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가장 자주 언급하는 단어이면서도 가장 많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강림절기를 통해 성령이 무엇인지, 성령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설교를 몇 편 이어 하고자 준비하였습니다.

성령이라 하면 대부분의 경우 무슨 특별한 영적 체험이라는 것으로만 연결하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나는 목사이지만 아직도 영적이라는 것에 대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이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다 육체의 체험입니다. 무슨 특별한 영적인 체험을 했다 해도 그것은 영적인 육체의 체험일 뿐입니다. 색안경의 색깔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교회가 지난 수십 년간 성령의 체험을 무슨 유체이탈이나 영육분리와 같은 이상한 것으로 혼동하고 주입하고 세뇌하였습니다. 이런 잘못된 성령교육으로 인해서 오늘날 교회가 이 세상과는 분리된 어떤 우주공간을 떠도는 존재로 스스로를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가 뿌리를 땅에 박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우선은 우리가 사는 물질세계를 인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계속 물질세계를 거부하며 영적인 세계만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런 영적추구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소수의 사람들-대부분 목사들이 되겟지만-이 오히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소유하고 누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것만 떠들고 성령을 무슨 우주에서 온 이상한 어떤 것, 어떤 힘으로 설명하려는 것에 여러분들이 동조하지 마셔야 할 것입니다.

성령은 가장 원초적이고 기초적인 인간의 감정과 양심을 통해 일하시기도 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을 통해 나타나는 분노의 감정입니다. 사람들은 성령은 화도 안내고 왼 뺨을 맞으면 오른 뺨을 갖다 대면서 그저 묵묵히 모든 수모와 고난을 감내하며 인내하는 것이라고들 많이 생각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불의를 보고서도 그저 모른척 해야 하는 것으로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분노하는 것이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때로는 분노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이 분노는 거룩한 분노입니다. 거룩한 분노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 신자이건 비신자이건, 남녀노소, 인종과 성별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들에게 기본적으로 주신 양심을 통해 발현되는 것입니다.

암몬 사람들이 길르앗 야베스로 쳐들어 왔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싸우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가 당신들을 섬기겠다’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몬의 나하스는 ‘내가 너희의 오른쪽 눈을 모조리 빼겠다.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는 조건에서만 너희와 조약을 맺겠다’고 합니다. 겁에 질리고 비통에 빠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통곡을 하면서 각지에 파발마를 띄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참으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평화를 요구하는 이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하고 한 지역에 사는 이들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폭력입니다.

그런데 밭을 갈던 사울이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무서운 분노를 터뜨렸다고 합니다. 사울이 무서운 분노를 터뜨린 이유는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세차게 내리셨기 때문이라고 성서는 증언합니다. 사울의 분노는 거룩한 분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성령이 임하셨기 때문에 거룩한 분노이고 약자들에게 무의미한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이기 때문에 거룩한 분노인 것입니다. 사울은 자기가 끌던 겨릿소 두 마리를 잡아 토막을 내서 그것을 전국 각지로 보내 ‘즉시 일어나 나와 암몬과 싸우지 않으면 모두 이 토막난 소처럼 될 것’이라고 협박(?)을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사울의 이 분노한 모습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성령의 모습을 어떻게 찾을 수가 있습니까! 겨릿소를 도축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것을 토막 내는 그의 모습에서, 그리고 토막 난 고깃덩어리를 각 지방으로 보내면서 협박에 가까운 말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는 성령을 떠올리지 못할 것입니다. 분명 그의 온 몸에는 피가 튀어 범벅이 되었을 것이고 그의 눈에는 분노의 빗발이 서려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교회에서 말한 성령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세상일에 담 쌓고 그저 교회에서 방언하고 기도하다가 입신하고, 가끔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은사도 받고 등등 이런 일들이 성령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그저 부드럽고 소위 영적인 카리스마가 있고 신비로운 기운을 풍기는 사람이 성령 받은 사람이라고 배웠고 또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은 우리가 거룩한 분노를 느끼게 합니다.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어떤 일을 통해 느끼는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이 짓밟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평화가 파괴되며 생명이 유린되는 것을 보고 느끼는 분노가 바로 거룩한 분노, 성령이 세차게 내리실 때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마음을 사로 잡으셔서 도저히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상태, 도저히 참고 넘어가거나 그냥 못 본 척 넘어갈 수 없는 상태가 바로 하나님의 신이, 하나님의 영이, 성령이 우리 안에 찾아오신 증거라는 것을 여러분이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영이 세차게 임하셔서 거룩한 분노를 느끼시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삶의 결단이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가며 : 여러분은 오늘날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이 복잡다단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보시면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전직 대통령이 자살을 하고, 검찰이 중간보고랍시고 수사내용을 정확한 확인 없이 언론에 흘리며 언론플레이를 하고, 검찰의 배후에는 현 정권이 있다는 생각에 대부분의 국민이 동의를 하고, 법관이 정권의 조종을 받아 판결을 고무줄처럼 이랬다 저랬다 하고, 대법원장이 판사들에게 특정 사건에 대해 정치적인 주문을 하고, 국민들이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분향소를 경찰이 와서 부수고, 그것이 전경의 실수였다, 현장 지휘자가 실수했다, 언어소통이 잘 안 됐다며 경찰청장이라는 사람이 계속 말을 바꾸고, 상가세입자가 철거투쟁 선수로 바뀌고, 건물 옥상에서 저항하다가 불에 타 죽고, 50년 동안 대결과 반목을 거듭하던 한민족이 이제야 좀 화해하고 서로 교류하나 했더니만 삐라살포에 PSI 가입 등으로 다시 냉전시대로 되돌아가고... 더 이상 말하기도 입이 아픈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때 혹시 여러분은 분노를 느끼십니까? 생명과 평화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보시면서 거룩한 분노에 사로잡히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을 모신 분들입니다. 이제는 이 거룩한 분노를 터뜨리고 하나님께 쓰임 받으십시오. 그것이 성령의 역사이고 성령이 함께 하시는 증거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거룩한 분노를 느끼고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쓰임 받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로운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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