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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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웨슬리정신, 감리교회 정신

성경 : 마태복음 22,37-40

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38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 39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40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 있다."

 

들어가며 : 어제 참으로 비통한 뉴스를 접하였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소식입니다. 63세밖에 안 된다는데 그가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이로써, 중도개혁파를 대표하는 인물로써 존재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황망한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사회와 정치의 현주소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선택한 것은 분명 비판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영화배우 최진실과 마찬가지로 가장 높은 곳에 빛나는 별과 같이 존재했던 이가 자살을 선택하는 것을 볼 때 가난하고 어려운 중에도 꿋꿋하게 버텨나가는 서민들은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의 죽음에서 1970년 스스로 자기 몸에 불을 지르고 ‘노동자도 사람입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전태일과 뻔한 결과를 예측하면서도 묵묵히 그 길을 가 결국 십자가 처형으로 삶을 마친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모든 것을 잘 한 것은 아니지만 서민들의 삶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오늘 부자들과 기득권자들의 천국으로 바뀌어가는 한국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국민들이 깨어나고 생전에 고인이 못한 일들을 계승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황망한 길을 가신 노무현 전대통령과 그 유족들, 그리고 그의 죽음에 깊이 애도하며 슬퍼하는 국민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오늘은 271주년 웨슬리회심기념주일입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로 불리는 웨슬리는 참으로 엄격하고 열정이 있으며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대학을 다닐 때 이미 신성클럽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감리교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감리교회에서 감리라는 말은 건축물을 건축할 때 설계도면대로 제대로 지었는가 검사하는 감리와 같은 한자를 씁니다. 감리교회를 영어로는 메소디스트(Methodist)라고 하는 메쏘드(method)는 방법, 원칙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감리교인은 규칙쟁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웨슬리의 감리교운동은 원칙적이고 철저하며 열성이 넘치고 또한 지혜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웨슬리에게는 그런 열심이 있었고 영국성공회 신부가 되기도 하였지만 제대로 된 회심을 경험한 것이 1738년 5월 24일이었습니다. 그에게 열심은 있었지만 회심은 없었고 인간적 투쟁은 있었지만 영적인 투쟁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그 체험을 통해 그의 감리교운동은 더욱 완벽해졌고 개신교역사를 통틀어 가장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어 냈습니다.

저는 사실 교파로 나뉘어져 있는 것에는 부정적인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은 참으로 심각합니다. 장로교회의 경우에는 교파, 교단이 100여개나 되니 이것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고 뛰쳐나가서 새로운 교단을 하나 설립하다보니 나홀로교단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가 장로교니 감리교니 침례교니 오순절이니 하는 것 없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 좋겠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의 감리교회 목사 됨을 결코 포기할 수 없기도 합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장로교목사나 감리교목사나 다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감리교회는 영혼과 육신, 거룩성과 세속성, 교회와 사회의 통합을 이룬 교회운동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대부분의 교파에 속한 목사들은 교회가 기독교, 특히 개신교라는 종교적 행사를 위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규정하지만 감리교회 목사는 교회와 사회라는 모든 영역을 위해 세움 받은 존재라고 확신하고 자신을 규정합니다. 그것은 감리교회 운동을 시작하였고 회심 사건을 통해 감리교회 운동의 완전을 이루었던 존 웨슬리가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웨슬리의 독창적인 발상은 아닙니다. 그것은 가장 성서적인 사상이고 또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육신, 그리고 이 땅에서 행하신 공생애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지극히 당연한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 혹은 회당보다는 거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머물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적인 영혼의 치유행위만이 아니라 육체적인 치유도 기꺼이 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만 복을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에게도 복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써 종교적인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그 자신이 살아가신 모습은 지극히 육체적, 사회적, 세속적인 존재였던 것입니다.

웨슬리의 신앙적인 면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는 이미 신성클럽 때부터 신앙동지들과 함께 매일매일의 학과 일정표를 만들고 종교적 의무를 지키며 침식 시간을 될 수 있는 대로 줄이는 등 신앙향상을 위해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이때부터 "규칙장이들"(methodists)라는 별명을 얻은 것이니 그 신앙적 철저성은 재론할 필요가 없고 다른 어떤 개신교 창시자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교파는 흉내조차 내지도 않고 내지도 못하는 특별한 원칙이 감리교회에는 있습니다. 웨슬리는 예언자적인 자세로 사회와 경제 부조리의 원인을 지적하고 해결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습다. 그는 밀을 부유한 자들의 말먹이와 술을 빚는데 과도하게 소비하는 것을 금하기도 하였고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작업장을 만들고 직업을 창출하였습니다. 옥스포드의 신성구락부 때부터 행한 감옥 방문과 킹스우드 학교를 통한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은 노인에게까지 확산되었습니다. 또한 웨슬리는 노예 해방을 주장하였습니다. 웨슬리는 노예제도를 “모든 사악함의 총합체”라고 규탄하였고, 1788년에는 노예시장의 중심지인 브리스티오(Bristio)에서 노예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웨슬리는 1791년 2월 24일에 당시의 저명한 정치인 윌리암 윌버훠스(William Wilberforce)에게 편지를 보내 노예폐지 운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도록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으로 나가시오. 인류의 역사가 태양을 본 이래 가장 사악한 악(惡)인 노예제도가 영국과 미국에서 사라질 때까지 투쟁하시오!” 라고 강한 어조로 권면하였습니다.

감리교회가 가장 잘났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설교가 저를 지치게 합니다. 지금 한국감리교회가 겪고 있는 내홍은 우리가 지금 웨슬리정신, 감리교회의 정신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는가 하는 것을 너무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리정신, 감리교회정신이 미래교회에 대안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핵심을 우리에게 제시하며 그것을 실천할 것을 또한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기독교 사상이라는 점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그리고 부담스럽게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계명과 율법과 예언서 이 말은 성서 전체를 의미합니다. 물론 예수님 당시 성서는 구약 39권이겠지요. 예수님은 성서 전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둘이 서로 대등하게 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종교적영성의 차원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사회적 인간적인 차원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신앙의 근간이라는 것을 예수님 스스로가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감리교인으로 부름을 받은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적 실천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아무리 좋은 교리, 아무리 좋은 취지와 목적을 가진 감리교회라 하더라도 그것을 지켜 이루는 신앙실천이 없다면 차라리 갖지 못한 것보다 못할 것입니다. 차라리 갖지 못했다면 없고 몰라서 못했다지만 그런 귀한 가르침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지키지 않는다면 오히려 꾸지람이 더 커질 것입니다.



나가며 : 감리교회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우리는 그 어떤 교파도 갖지 못한 모범적인 전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서적이면서도 또 이성적이며 또한 체험적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모범적인 전통을 이어가고 계승하고 승화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종교라는 틀 안에서만 머무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지 않고 세계가 나의 교구라고 선언했던 웨슬리의 신앙적이고 또한 사회적 열정을 배워 참된 웨슬리 정시, 참된 감리교 정신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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