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버이께 감사하라
성경 : 마가복음 7,10-13
10 모세가 말하기를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다. 11 그러나 너희는 말한다.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게서 받으실 것이 고르반(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습니다' 하고 말만 하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그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너희가 물려받은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며, 또 이와 같은 일을 많이 한다."
들어가며 : 제가 참 좋아하는 책 중에 제목이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이현주 목사님이 쓰신 책인데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제목이 너무나 시적이며 또한 진리라는 생각이 들어 귀하게 기억하고 있는 책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조금만 지난 후에 돌아보면 그 제목 그대로 살아온 인생의 발자국마다 하나님의 은혜, 은총이 아닌 것이 없었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요즘 어떠십니까? 혹시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우신 분, 삶의 재미나 의미를 별로 못 느끼시겠다고 생각하시는 분, 미래의 전망이 막막하다고 여겨져 한숨만 나오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지금은 힘들더라도 결국 그 발걸음을 은총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믿고 오늘을 인내하시는 분들에게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깊은 사랑과 넓은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가장 하기 힘든 설교 중에 하나가 바로 어버이주일 설교입니다. 어버이주일 설교라는 것이 본문을 어떤 말씀을 쓰던지 간에 부모님께 잘 하라는 주제를 풀기 때문에 원래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부모님 호강시켜드리는 사람이 해야 그게 공신력도 있고 뭔가 가슴에 와 닿는 교훈도 있는데 저는 별로 그런 사람이 못 돼서 여러분 앞에서 설교하기가 부담스럽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속이기도 많이 하고 속도 적잖게 썩혀드렸던 시절을 보낸 데다 지금도 여전히 무뚝뚝하게 부모님을 대하는 사람이라 영 자리가 불편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받을 줄 아는 자식의 입장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딱히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데 이제 저도 아버지가 되니까 조금씩 알게 되더군요. 그래도 부모님 마음을 이해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어쨌건 어버이주일 설교는 영 부담스럽습니다. ‘당신이나 잘 하시오, 우린 다 잘 하고 있소’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인간 방현섭의 말로 듣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귀담아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설교제목이 ‘어버이께 감사하라!’입니다. 원래는 ‘감사하십시오’로 했다가 이것이 부탁이나 요청이 아니라 강력한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깨닫고 제목을 좀 세게 했습니다. 맞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옵션이나 선택사양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써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당연한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령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써 해야 할 의무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성서에만 있는 말씀은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항상 해왔던 말씀이고 항상 강조했던 덕목입니다. 그걸 보니 참 효도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집이나 다 그럴까요? 저도 청소년 시절에는 부모,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불편했습니다. 제가 학창시절에 유일하게 한 번 가출을 했었는데 그게 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이었습니다. 일주일 가량 집을 나가 돌아다녔는데 요즘 TV 광고대로 ‘집 나가면 개고생’이더군요. 아무튼 그런 부자지간이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아버지가 달리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무슨 장한 일을 하시고 큰 귀감이 될만한 일을 하셔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아버지가 살아오신 질고의 인생길을 보게 되는 순간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효도의 마음보다는 연민이 먼저 생기더군요. 불쌍한 인생을 사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힘겨운 시대를 힘겹게 살아오셨구나 하는 안스러움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생은 아버지만이 아니라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제가 좀 더 장성한 것도 있고 해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좋은 친구와 같은 관계가 되었습니다. 버릇 없는 건가요? 아무튼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어버이를 공경하라는 명령을 저는 먼저 인간으로써 존중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에 대한 애정과 관심, 연민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아픔과 고통, 고민과 슬픔을 지닌 존재라는 말입니다. 전적인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원죄로 인한 죄의 무게에 버거워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바라보신 것도 바로 이런 인간존재의 죄성과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먼저 죄의 무게를 지니고 현대사의 격랑을 견뎌온 한 사람으로써 우리의 어버이를 본다면 우리는 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그 인생에 경외감과 혹은 안타까움들이 생겨나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우리 어버이를 인간이 아닌 부모, 즉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존재로 본다면 공경할 마음보다는 받는 것이 당연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심하게는 부모를 돈줄, 유산으로 본다면 결코 공경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부모 자식 간에 생기는 문제는 대부분 서로가 서로를 인간으로 보지 못하고 하나의 목적이나 수단으로만 봤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 예배 후에 부모님을 찾아 뵙고 그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시고 얼굴에 패인 주름살을 유심히 들여다보시면서 인간으로써 살아오셨던 지난 날을 발견하고 한 인간으로써 우리의 부모의 새로운 모습과 대면하시기를 바랍니다.
여자가 아기를 낳는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사실 그동안은 대충 그런가보다 했는데 요즘은 좀 보입니다. 동료 목사의 아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출산 이후 심한 우울증을 겪나봅니다. 여자가 아리를 낳으면 건망증이 아주 심해집니다. 머리도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고나면 뼈구성도 엉성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골다공증도 염려합니다. 몸도 부실해져서 살이 찌고 피부도 푸석푸석해집니다. 아무튼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생명을 얻지만 엄마의 생명은 쇠약해지더군요. 그걸 보고 ‘아하’ 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생명을 아이에게 나누어주는 것이구나! 제 생명을 줄여가면서 한 생명을 낳는 것입니다. 출생이 아니라 분생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만져지는 대상도 아니고 대면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는 ‘보이는 제 부모도 공경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상제를 공경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해야 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람은 자기에게 생명을 나누어주신 부모님을 사랑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무슨 패륜적인 일을 저지르면 더 많이 욕먹습니다. 그리고 멀쩡한 다른 기독교인까지 싸잡혀서 욕먹습니다. 더 많이 욕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괜히 옆사람까지 싸잡혀서 욕먹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더욱 우리의 어버이를 사랑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주제가 약간은 다르기는 합니다만 부모를 공경하는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은 더욱 저에게 해당하는 말씀인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내게 받으실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고르반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드려서 부모님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고르반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많습니다. 부모가 나보다 더 넉넉하시니까, 경기가 않 좋아서, 자식한테 뭘 받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시니까?
하나님이 진정 좋아하시는 것은 우리가 바치는 이런저런 유형무형의 봉사와 물질이 아니라 우리가 참사람답게 우리의 어버이를 사랑하고 공경하고 섬기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말씀도 그런 취지의 말씀입니다.
나가며 : 사실 부모를 공경하고 어버이를 사랑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 자기의 생각, 자기에 대한 관심에만 매여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자기의 생명을 나누어 주었다면 얼마나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더 이상 군소리 하지 않겠습니다. 어버이를 공경하십시오.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부모에게 공경하는 이들에게는 복이 약속되어 있다고 하나님은 선언하셨습니다. 제대로 어버이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성경 : 마가복음 7,10-13
10 모세가 말하기를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다. 11 그러나 너희는 말한다.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게서 받으실 것이 고르반(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습니다' 하고 말만 하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그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너희가 물려받은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며, 또 이와 같은 일을 많이 한다."
들어가며 : 제가 참 좋아하는 책 중에 제목이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이현주 목사님이 쓰신 책인데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제목이 너무나 시적이며 또한 진리라는 생각이 들어 귀하게 기억하고 있는 책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조금만 지난 후에 돌아보면 그 제목 그대로 살아온 인생의 발자국마다 하나님의 은혜, 은총이 아닌 것이 없었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요즘 어떠십니까? 혹시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우신 분, 삶의 재미나 의미를 별로 못 느끼시겠다고 생각하시는 분, 미래의 전망이 막막하다고 여겨져 한숨만 나오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지금은 힘들더라도 결국 그 발걸음을 은총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믿고 오늘을 인내하시는 분들에게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깊은 사랑과 넓은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가장 하기 힘든 설교 중에 하나가 바로 어버이주일 설교입니다. 어버이주일 설교라는 것이 본문을 어떤 말씀을 쓰던지 간에 부모님께 잘 하라는 주제를 풀기 때문에 원래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부모님 호강시켜드리는 사람이 해야 그게 공신력도 있고 뭔가 가슴에 와 닿는 교훈도 있는데 저는 별로 그런 사람이 못 돼서 여러분 앞에서 설교하기가 부담스럽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속이기도 많이 하고 속도 적잖게 썩혀드렸던 시절을 보낸 데다 지금도 여전히 무뚝뚝하게 부모님을 대하는 사람이라 영 자리가 불편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받을 줄 아는 자식의 입장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딱히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데 이제 저도 아버지가 되니까 조금씩 알게 되더군요. 그래도 부모님 마음을 이해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어쨌건 어버이주일 설교는 영 부담스럽습니다. ‘당신이나 잘 하시오, 우린 다 잘 하고 있소’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인간 방현섭의 말로 듣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귀담아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설교제목이 ‘어버이께 감사하라!’입니다. 원래는 ‘감사하십시오’로 했다가 이것이 부탁이나 요청이 아니라 강력한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깨닫고 제목을 좀 세게 했습니다. 맞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옵션이나 선택사양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써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당연한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명령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써 해야 할 의무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성서에만 있는 말씀은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항상 해왔던 말씀이고 항상 강조했던 덕목입니다. 그걸 보니 참 효도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집이나 다 그럴까요? 저도 청소년 시절에는 부모,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불편했습니다. 제가 학창시절에 유일하게 한 번 가출을 했었는데 그게 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이었습니다. 일주일 가량 집을 나가 돌아다녔는데 요즘 TV 광고대로 ‘집 나가면 개고생’이더군요. 아무튼 그런 부자지간이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아버지가 달리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무슨 장한 일을 하시고 큰 귀감이 될만한 일을 하셔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아버지가 살아오신 질고의 인생길을 보게 되는 순간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효도의 마음보다는 연민이 먼저 생기더군요. 불쌍한 인생을 사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힘겨운 시대를 힘겹게 살아오셨구나 하는 안스러움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생은 아버지만이 아니라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제가 좀 더 장성한 것도 있고 해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좋은 친구와 같은 관계가 되었습니다. 버릇 없는 건가요? 아무튼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어버이를 공경하라는 명령을 저는 먼저 인간으로써 존중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에 대한 애정과 관심, 연민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아픔과 고통, 고민과 슬픔을 지닌 존재라는 말입니다. 전적인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원죄로 인한 죄의 무게에 버거워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바라보신 것도 바로 이런 인간존재의 죄성과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먼저 죄의 무게를 지니고 현대사의 격랑을 견뎌온 한 사람으로써 우리의 어버이를 본다면 우리는 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그 인생에 경외감과 혹은 안타까움들이 생겨나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우리 어버이를 인간이 아닌 부모, 즉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존재로 본다면 공경할 마음보다는 받는 것이 당연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심하게는 부모를 돈줄, 유산으로 본다면 결코 공경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부모 자식 간에 생기는 문제는 대부분 서로가 서로를 인간으로 보지 못하고 하나의 목적이나 수단으로만 봤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 예배 후에 부모님을 찾아 뵙고 그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시고 얼굴에 패인 주름살을 유심히 들여다보시면서 인간으로써 살아오셨던 지난 날을 발견하고 한 인간으로써 우리의 부모의 새로운 모습과 대면하시기를 바랍니다.
여자가 아기를 낳는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사실 그동안은 대충 그런가보다 했는데 요즘은 좀 보입니다. 동료 목사의 아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출산 이후 심한 우울증을 겪나봅니다. 여자가 아리를 낳으면 건망증이 아주 심해집니다. 머리도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고나면 뼈구성도 엉성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골다공증도 염려합니다. 몸도 부실해져서 살이 찌고 피부도 푸석푸석해집니다. 아무튼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생명을 얻지만 엄마의 생명은 쇠약해지더군요. 그걸 보고 ‘아하’ 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생명을 아이에게 나누어주는 것이구나! 제 생명을 줄여가면서 한 생명을 낳는 것입니다. 출생이 아니라 분생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만져지는 대상도 아니고 대면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는 ‘보이는 제 부모도 공경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상제를 공경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해야 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람은 자기에게 생명을 나누어주신 부모님을 사랑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무슨 패륜적인 일을 저지르면 더 많이 욕먹습니다. 그리고 멀쩡한 다른 기독교인까지 싸잡혀서 욕먹습니다. 더 많이 욕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괜히 옆사람까지 싸잡혀서 욕먹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더욱 우리의 어버이를 사랑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주제가 약간은 다르기는 합니다만 부모를 공경하는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은 더욱 저에게 해당하는 말씀인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내게 받으실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고르반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드려서 부모님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고르반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많습니다. 부모가 나보다 더 넉넉하시니까, 경기가 않 좋아서, 자식한테 뭘 받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시니까?
하나님이 진정 좋아하시는 것은 우리가 바치는 이런저런 유형무형의 봉사와 물질이 아니라 우리가 참사람답게 우리의 어버이를 사랑하고 공경하고 섬기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말씀도 그런 취지의 말씀입니다.
나가며 : 사실 부모를 공경하고 어버이를 사랑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 자기의 생각, 자기에 대한 관심에만 매여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자기의 생명을 나누어 주었다면 얼마나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더 이상 군소리 하지 않겠습니다. 어버이를 공경하십시오.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부모에게 공경하는 이들에게는 복이 약속되어 있다고 하나님은 선언하셨습니다. 제대로 어버이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