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9일 주현절후 제1주 좋은만남교회 낮 예배 설교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이관택
본문: 고린도후서 2장 14~17절
14 그러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어디에서나 우리를 통하여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5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16 그러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냄새가 되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됩니다. 이런 일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17 우리는, 저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파우스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껍질을 벗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 즉 변화의 때가 왔을 때, 옛날 허물을 벗지 못하고, 옛날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옛날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사람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뱀이 껍질을 벗는다는 것! 즉 허물을 벗는다는 것은 바로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성장의 때에 더 멋지고, 더욱 장성한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을 감싸고 있던 껍질을 벗어야만 비로서 뱀은 성장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할 수 있는 때에 껍질을 벗지 못하면 결국 뱀은 그 껍질에 갇혀 죽게 되지요. 모든 생명체는 성장합니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는 성장을 위해서 껍질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겠죠. 여러분의 껍질은 무엇입니까? 벌써 2011년이 시작 된지도 열흘이 다 되어 갑니다. 오늘 주보 표지를 잠깐 보시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날을 허락해 주셨는데, 과연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하고, 더욱 멋진 사람, 더욱 장성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과연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까?
고린도 후서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라는 말씀처럼 2011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날에 우리 좋은만남공동체의 모든 지체들이 새사람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2011년 표어처럼 "예수감동"! 우리 모두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처럼 느끼고, 예수님처럼 생각하는 새로운 삶, 그리하여 더욱 성숙한 삶을 살아내고 성숙한 공동체를 함께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다른 사람의 말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칭찬 한마디가 한사람을 완전히 바꾸어 놓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비난하는 한 마디는 사람을 죽게 만들기도 하죠. 여러분도 살면서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너무 큰 힘과 위로를 얻었던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저는 지난 가을 쯤에 어떤 한 사람에게 진짜 잊을 수 없는 큰 힘이 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에게 "당신은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진짜 진지하고, 간절한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계속 이렇게 살아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또 변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도 해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그 시기에 스스로 조금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라고 자책하던 때였습니다. 반년 정도 목회를 하다보니까 목회를 한다는 것이 참 어렵구나, 난 너무 약한 사람이구나, 설교는 왜 이렇게 어렵지? 모든 것이 낮설게 느껴지고, 어렵게 느껴지고, 부족하게 느껴지던 때 였습니다. 자존감이 없었던 때 였습니다. 그 때 들었던 한 마디 "당신을 보고 있으면 예수님이 생각나요!" 그 말은 제게 너무 큰 위로가 되었고, 더불어 그 때부터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예수님이 생각날까?" 이 말 들으면서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이 속으로 "그 말 한마디 들었다고 지가 무슨 예수님인 줄 착각하고 있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조금 오만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예수님이 생각났으면 좋겠다"라는 저의 바램은 참 오만한 듯한 말이지만 어찌보면 참 당연한 말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보면서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은 참 당연한 것이 아닌가! 기독교인을 보면서 예수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은 참 당연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까먹고 사는 게 아닌가! 당연한 건데, 날 보면 당연히 예수님 생각나야 되는 건데, 우리가 서로를 볼 때, 예수님의 사랑이 생각나고, 예수님의 삶이 생각나고, 예수님의 용기가 생각나야 하는 건데... 우리 신앙생활 하는데 너무 기대치가 낮은 것 아닌가요? 옆 사람 보면서 고백해 보시죠. "당신을 보면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오늘 고린도 후서 2장 15절 말씀에서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라고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표현!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향기다! 바로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향기다. '예수향기'라~ 정말 바울은 위대하다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표현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고 헤어집니다. 흔히 무엇이 가장 오래 남는다고 하나요? 그 사람과의 사랑했던 감정? 아닙니다. 그 사람과 포옹했던 느낌? 아닙니다. 그 사람과 행복했던 기억? 아닙니다. 흔히 가장 오래 남는 것이 그 사람의 체취, 즉 냄새, 향기라고 말하죠. '향기'는 가장 은은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죠. 요즘 영화보러 극장에 가는데, 불광 CGV가 가까워서 자주 갑니다. 그런데 CGV에 가면 극장 안에 특유의 냄새가 있습니다. 이 냄새는 불광CGV를 가든 상암CGV를 가든 모든 CGV극장에서 영화 볼 때 나는 냄새입니다. 얘기를 들어 보니까 CGV가 마켓팅의 일환으로 사람들이 영화 보는데 CGV만의 향기를 맡게 한다는 것입니다. 실상 드러나지 않지만 이 냄새가 은근히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다고 합니다. CGV에서 영화를 보던 사람들이 다른 극장에 가면 평상시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그 냄새가 나지 않으니까 뭔가 답답하고, 쾌쾌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발걸음 CGV로 옮기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바로 이 '그리스도의 향기'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14절 말씀에서 우리를 통하여 그 향기를 풍기게 하신다고 합니다. 여러분을 보면서 자연스레 예수님이 생각나듯, 여러분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폴폴 풍기는 삶! 이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요
그럼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생각나게 할까요? 우리 함께 '예수 향기'의 3가지 특성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예수향기'의 첫 번째 특성 - 은은하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향기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입니다. 사람들과 소통을 위한 도구죠. 은은 하다는 것은 그 향의 농도가 너무 강하지도 않고, 너무 약하지도 않다는데 핵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예수향기를 세상에 풍기게 하시는데, 현대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너무 양극화 되어 있습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너무 과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향기로 보면 너무 그 향이 과하죠. 어떤 때는 역겨울 정도입니다. 향기는 은은 할 때 가장 좋은 법인데 그 향기를 사람들 코에 들이 부으니 사람들이 역겨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봉원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예수 향기를 전하는 것은 좋은데, 너무 과하니까 하나의 폭력으로 비쳐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코를 찌르는 향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 장소에 오래 있기가 힘듭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향긋한 향기가 되지 못합니다.
반대로 어떤 기독교인들은 아예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들어내지 않습니다. 그저 교회만 왔다갔다 할 뿐~ 자신의 삶에서 예수향기란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력서 종교란에 기독교인이라고 쓸 뿐 그 외의 그 사람이 욕망하는 것, 가치관, 사고방식, 실제로 사는 모습에서 전혀 예수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완전 망가진 방향제처럼, 30년동안 쓰지 않은 향수처럼 감동도 없고, 낌새도 없고, 신앙적으로는 있으나 마나한 그런 상태가 됩니다.
향기는 은은해야 합니다. 특히나 예수향기는 진짜 은은하고, 향긋해야 합니다.
향기를 은은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 필요합니다. 꾸준함과, 인내와 열정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진실되고 진솔한 관계가 필요합니다. 가끔 조금 과하기도하고, 조금 다운되기도 하는 것이 사람이긴 하지만요 그 안에 하나님과 조율함으로 예수향기를 유지하는 것, 그리함으로 나의 모습 보면서 "저 사람 참 은은하게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는 것은 얼마나 좋을까요?
'예수향기'의 두 번째 특성 - 향수보다는 방향제 같다
향수와 방향제의 차이를 생각해 보죠. 일단 가격이 엄청나게 차이나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용도입니다. 향수는 한 개인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사용됩니다. 하지만 뱡향제는 그 공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사용됩니다. 심지어는 그 방안의 개미들도, 쥐새끼들도 방향제의 향기를 함께 누립니다. 그러니까 방향제에는 명품이 없습니다. 그다지 자극적이지도 않습니다. 한 개인의 취향에만 맞춰져 있지도 않습니다. 단지 어떤 향기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할 것인가? 거기에 가장 큰 목적이 있습니다. 방향제는 아깝지도 않습니다. 누가 그 향기를 맡던지, 아니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향기를 공유하는게 목적이니까 방향제를 설치하는 것 아닙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오라고~
하나님께서는 예수향기를 품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자기에게만 집중하는 향수같은 사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해 함께 사는 방향제 같은 사람이길 원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복음도 어떤 한 개인만의 체험이나 한 개인만의 복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함께 공유하는 복음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보세요 내가 향수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방향제 같은 사람인가? 나를 보면 어떤 예수님이 생각나나?
마지막 '예수향기'의 세 번째 특성 - 한결같고, 일상적이다.
제 여자친구가 저에게는 좋은냄새는 아닌데, 뭔가 이관택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게 뭔 냄새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난다고 합니다. 그게 땀에 절어 있을 때나, 집에서 때 빼고 광내고 만났을 때나 한결 같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직도 저는 그 냄새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향기는 바로 이렇게 한결 같고 일상적이라는 말입니다.
뭔가, 억지로 하는 것, 가식적으로 하는 것은 어쩌다 한 두 번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무슨 이벤트 같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생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평상시에 내가 예수님처럼 느끼고 예수님처럼 살려고 계속해서 마음 먹지 않으면 예수향기는 절대로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예수향기는 사실 특별한 어떤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하나님과의 은사체험도 아닙니다. 그냥 길 가는 것 입니다. 내가 가던 길 가고 있는데 그 길이 무성하고 향긋한 냄새들이 진동하네, 그 길 걷고 있는 것 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그 향기가 전달되네 뭐 이런 것입니다. 우리 함께 예수를 따르는 길을 걷는 동행자 아닙니까?
여러분들도 예수향기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여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니 '나도 예수님을 생각나게하는 사람이 되야지'라는 소망을 품으시길 바랍니다. 예수께서 가신 그 길 가다보면 예수님이 봤던 별들을 볼 것이고, 예수님이 봤던 나무들을 볼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셨던 병든 자를 볼 수도 있고, 예수님이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요. 이제는 나 자신이 하늘의 별을 봐도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을 봐도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요즘 GM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공농성 투쟁을 이어 가는데, 그러한 사회문제를 봐도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내가 가는 이 길 예수님께서 먼저 가셨으니까 그 길 따라 가면서 예수님을 생각하고, 또 그 길 가는 나를 보면서 다른 이들은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삶의 향기 아닐까요?
여러분들의 삶에서 향긋한 예수향기가 진동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