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8.03.24 15:46

2018년 3월 25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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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립니다!
1. 오늘은 종려주일로 예배하였습니다.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모진 고문과 모욕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고난에 동참하는 경건한 한 주를 지내시기 바랍니다. 다음주일은 부활주일입니다.
2. 오늘 오후부터 교회학교가 시작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교회학교에서 봉사하시는 여러분과 어린이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3. 수요성서대학이 수요일 오전 11시에 '성서의 어려운 구절 이해'로 열립니다. 차량운행을 위해 참여하실 분들은 미리 알려주시고 많이 참여해 주십시오. 
4. 예수님이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린 것을 기억하는 성금요일에는 우리도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한 끼 금식하고 식사비용을 이웃을 위해 헌금해 주십시오.
5. 4월 5(목)-6일(금) 중랑지방 금란교회에서 2018년 서울연회가 열립니다. 연회원이신 교역자 네 분과 임정희 집사님은 꼭 참석하실 수 있도록 일정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 목회서신
문득 전에 초록가게 열심히 하던 것이 생각이 나서 홈페이지에서 옛날 사진을 찾아보았습니다. 마지막 사진이 2013년 가을에 오픈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아마 그 해를 마지막으로 초록가게를 정리했던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푸르게 지키자는 생태적 관심과 소명으로 열심히 했었습니다. 그동안 애써주신 분들, 특히 함옥분 장로님과 오호숙 권사님의 노고가 깊으셨습니다. 이 일이 아득하게 여겨지는 것을 보니 우리교회가 '한때' 생태운동을 했던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요즘도 가끔 불필요하게 켜져 있는 전등을 보거나 겨울철 동파를 막기 위해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놓는 것에도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 것이 사실입니다. 
피조세계를 지키는 일은 결코 '한때' 하다가 끝나는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잘 지키고 가꾸다가 후세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한때'라는 이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리던 중에 이번에 감리교회에서 창조세계 보전을 위한 실천운동의 일환으로 '햇빛발전협동조합'을 만든다고 합니다. 이 운동을 통해 사회적 신뢰도 없고 선교환경 조성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합니다. 서울시에서는 가가호호에 태양광 발전용 패널 설치를 운동의 차원에서 장려하고 있는데 이와 보폭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300와트 가정용 미니 태양광 발전설비가 70만원인데 서울시에서 60만원을 지원하다고 합니다. 본인 자부담은 10만 원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작은 설비가 한 달에 1만 원 정도 전기를 만들어 낸다고 하니 대견하기까지 합니다. 올해는 5만 가구에 선착순으로 지원한다고 하고요. 햇빛발전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조합가입비는 3만원이고 탈퇴 시 2만원을 돌려준다고 하고 작은 교회의 발전설비 지원에 수익금을 사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실 2005년 우리교회 예배당을 건축할 때 옥상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하고 싶었는데 당시에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비용이 들어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었는데 이제 지원금도 많아지고 효율도 높아졌다고 하니 우리 교회 옥상에도 설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우리교회도 햇빛발전협동조합에 단체가입(10구좌)을 하고 옥상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면 어떨까... 교우님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 좋은만남 이모저모

 

“이재원 고수정 성도님 부부가 등록하셨습니다
좀 늦은 소식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이재원 성도님 부부가 지난 주일에 정식으로 등록하셨습니다. 고수정 성도님은 신년 첫 주일부터 나오시다가 등록하셨고 남편 이재원 성도님도 몇 주 전부터 나오시다가 지난주에 결단을 하셨습니다. 오후에는 우리교회만의(?) 환영식도 하였습니다. 좀 일찍 끝난 게 아쉽기는 합니다만! 교인의 수평이동이 빈번한 시대에 교회에 다녀본 적이 없으신 부부가 우리교회에 오셔서 등록하신 것이 큰 의미가 있을 듯싶습니다. 쌍수를 들어 환영하며 하시는 택배일도 안전하게 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앞으로 함께 행복한 시간 만들어 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보니 환영의 사진도 한 장 같이 못 찍었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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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성서대학이 개강했습니다”

제가 평창 패럴림픽에 응원을 가는 일정이 생기는 바람에 한 차례 연기하였던 수요성서대학이 드디어 지난주 수요일에 개강하였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함희옥 집사님은 따님이 둘째를 출산을 하셔서 육아 문제로 참가하지 못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양연화 집사님도 학업의 꿈을 이루시기 위해 역시 이번 학기에는 함께 하지 못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고수정 성도님이 함께 하시게 되어서 두 분의 빈  자리가 아주 썰렁하지만은 않습니다. 이번 학기는 '성서의 어려운 구절 이해'라는 주제로 공부하는데 지난주에는 '두 개의 창조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맛난 ‘닭 한 마리’ 점심식사를 함께 나누고 연신내 김현진님이 오픈하신 '감싸네' 가게에 들러 커피도 한 잠 마셨습니다. 이번 학기도 잘 부탁드립니다. 
 
■ 사회성화를 위한 역사기억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사고 발생"
1987년 건조, 1989년 배치된 PCC-772 천안은 충청남도 천안시의 이름을 딴 한국해군의 포항급 초계함으로 대한민국 해군이 건조하여 사용했다.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백령도 남방 2.5 km 지점에서 경계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중 침몰하였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침몰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대한민국에 있는 10개 민간 기관 및 전문가 27명과 군 전문가 22명, 국회 추천 전문위원 3명이 참여하고 객관성과 공인성을 높이기 위해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스웨덴 4개국 전문가 24명을 포함한 민군합동조사단을 구성하여 사건 발생 54일 만에 천안함이 북한군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전면 부인하였고 러시아, 중국 등도 이견을 표명했다. 정부의 대응과 발표에 석연치 않은 점들이 많다는 지적도 있었으며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서프라이즈 대표)은 정부의 발표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천안함 침몰 사고를 재조사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여러 건의 재조사 요청 서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폐막된 평창 동계올림픽에 온 북한 고위대표단에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것으로 규정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포함된 것을 놓고 보수권이 격렬하게 반발하였다. 천안함 침몰은 현재진행형이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투명하게 재조사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출처 : 위키피디아(https://ko.wikipedia.org)
 
■ 짧은 얘기 깊은 생각
강원국씨의 「회장님의 글쓰기」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한 시골마을에 네 사람이 살고 있었다.
네 사람의 이름은 ‘모두(everybody)’, 
‘누군가(somebody)’, ‘아무나(anybody)’, ‘아무도(nobody)’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이 마을에 심각한 위기가 생겼다.
네 사람이 모여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회의를 했고,
오랫 동안 토론한 결과 그 일을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모두’는 ‘누군가’가 틀림없이 그 일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았다. 
이를 보고 ‘누군가’가 매우 화를 냈다. 
그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산처럼 마른 장작이 쌓여있다할지라도
불씨가 없으면 불이 붙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머릿수’가 아니라 ‘열의에 찬 불씨 하나’입니다. 
‘아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 힘입니다. 
‘나부터’’ 작은 것부터’ ‘지금부터’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덕정감리교회 문병하 목사님의 페이스북 中]
 
■ 감리교는 무엇을 믿는가?
이찬석 지음 KMC (2014)
 
사회 참여와 실천의 전통을 자랑하는 감리교회의 신앙고백 기본을 해설한 "감리교는 무엇을 믿는가?"를 연재합니다. 이 글을 통해 감리교인의 정체성을 갖고 신앙의 정수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3. 십자가의 죽음(2)
     우리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형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빌라도에게만 있다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로마제국에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시 유대교의 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비난하신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마태복음 23:25) 또한 마태복음 26장 3절에 따르면,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한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형 선고에 대한 책임은 로마의 정치적 세력과 유대교의 정치적 세력 모두에게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십자가 가선은 종교적인 사건이면서 정치적인 사건으로 읽어 가야 한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는 여러 분파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대표적인 분파는 사두개파, 바리새파, 젤롯파, 에세네파이다. 사두개파는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의 식민지 세력과 결탁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관리하며 성전 중심적 유대교를 지향하였고, 바리새파는 회당을 중심으로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면서 유대교를 지켜가던 분파였고, 젤롯파는 로마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추구하였고, 에세네파는 속세를 떠나서 금욕적인 삶을 살아가던 분파였다. 예수님이 추구하신 영성은 에세네파와 가장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지만, 예수는 금욕적인 삶보다는 먹고 마시기를 탐하는 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축제적인 삶을 살았고, 활동의 무대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였던 점에서 에세네파와 차이성을 지닌다.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던 분파는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였다. 이들은 예수님 당시 유대교 실제적인 지도자들이었으며, 예수님의 선포는 그들에게 심각한 도전을 주었다. 또한 그 들은 로마의 정치적인 세력에 대하여 저항하기보다는 결탁하였으므로 예수의 십자가 주음은 종교적인 세력과 정치적인 세력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하늘로부터 구름을 타고 내려와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초월적인 힘을 지닌 존재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되었다.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성공적인 메시아상이라면, 십자가상의 예수는 실패자의 모습이다. 십자가는 수치와 굴욕의 상징이므로 사도바울은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고린도전서 1:23)이라고 말한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마가복음 15:34)라고 부르짖으셨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을 받으신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님의 삶의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였으며 부활과 승천으로 이어짐으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였던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은 과거의 사건으로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사건, 미래의 사건으로 지평이 확대된다.
 
4. 부활승천(1)
     우리는... 부활승천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로마와 유대교 세력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셨던 예수님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승천하셨다. 감리회 신앙고백은 “부활승천 하심으로”라고 표현함으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함께 고백하고 있다. 감리교의 교리는 예수님의 부활에서 몸의 부활이 배제된 영의 부활을 고백하지 않는다. 감리회의 종교강령 제2조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과연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시어 완전한 인성이 붙은 모든 것과 육체를 다시 가지시고 천국에 오르시며…”라고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적이면서 육체적인 몸의 부활이다. 예수님이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음은 하나님께서 죽음의 세계에 창조적으로 개입하셨음을 의미하며,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확증되었음을 의미한다.(계속) 
 
■ 영화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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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처럼 Play On!”
 
<플레이 온>(Play On) | 변규리 감독 작품 | 83분, 한국, 2017년  
 
 변규리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플레이 온>을 통하여 SK브로드밴드 케이블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앗, ‘노동자’라니. ‘투쟁’이라니.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튀어나와 영화에 대한 흥미를 초반부터 접으려 한다면 굳이 그러실 필요가 없다. 우리가 ‘노동자’하면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와 내러티브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플레이 온>은 국내 최고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2017년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개막작인 동시에 관객들이 뽑은 올해의 작품으로 선정되어 한 영화제의 개/폐막작을 모두 독차지했던 이례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자칫 무겁거나 비장하게 흘러가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이 영화에는 영웅적인 노동운동이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서글픈 장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고공농성을 하고,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생존권의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실은 누군가의 아들, 삼촌, 동생과 같은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며, 그들이 느끼는 힘겨움과 막막한 노동현실의 모순이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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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가 달라졌어요>라는 지역 공동체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SK브로드밴드 광명지회’ 노동자들. 이들은 SK브로드밴드에서 인터넷과 TV를 연결하고, A/S를 담당한다. 그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에는 SK라는 대기업의 브랜드가 붙어있어 뭔가 정돈되고 안정된 기운을 풍기고 있지만, 사실 이들은 유니폼의 위상과는 별 상관이 없는 ‘하청노동자’일 뿐이다. 인터넷과 TV를 연결하는 주요 케이블조차 회사에서 지원되지 않아 노동자 개인이 구입해야 하고,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기업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휴일도 주말도 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동해야 한다. 전선을 만지는 일의 특성상 감전사고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을 뿐더러 비나 눈이 오는 날엔 그 위험도가 몇 배로 상승하지만, 안전장비 또한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온갖 장비들을 온몸에 주렁주렁 매달은 노동자가 높디높은 전신주 위를 아슬아슬하게 기어오르는 장면만큼이나 위태로운 것이 바로 케이블 노동자들의 삶 그 자체이다. 이런 열악한 현실은 비단 SK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여러 통신사 하청노동자들이 연합하여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노숙농성과 고공농성을 하기에 이른다. 
 
 영화 <플레이 온>은 노동조합의 하위조직인 한 지회의 구성원들을 통하여 노동운동의 ‘다차원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의하고 차별적인 현실에 대한 변화의 가능성을 희망하는 노동자, 현실의 벽에 부딪혀 투쟁을 포기하고 후퇴하는 노동자, 가정사 등을 이유로 노조를 그만두고 회사를 떠나는 노동자, 견디기 힘든 악조건 속에서도 계속 의미 있는 삶을 이어가고자 노력하는 노동자. 이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다. 때론 열정적이고, 때론 비겁하며, 때론 현실적인 이 다양한 모습들은 나 자신과 우리 모두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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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삶의 어떤 한 부분만을 떼어서 그 인물의 전 생애가 그러했으리라 각색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다양한 모습을 지닌 삶의 순간순간이 모여 하나의 생애를 이룬다. 어떨 땐 마음에 들고 어느 때엔 외면하고 싶은 너와 나의 모습들이 꾸준하게 수놓아져 아름다운 삶의 풍경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우여곡절을 겪은 노동자들이 같은 모습으로 방송을 하면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다지 대단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자신들의 삶을 지역 공동체 라디오를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노동자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영웅'이 아니라 '사람'이 보인다. 상징화된 ‘노동자’가 아니라 '실제 당신'의 이야기가 ‘Play On’되고 있는 것이다. 대단스러운 영웅담은 그저 영웅담일 뿐, 막상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때론 웃으며, 때론 눈물 흘리며 그저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해보면 예수의 실존도 그랬던 것 같다. 좀 불경한 이야기 같지만 예수님도 이 땅에서 살아갈 적에 상스런 욕도 하고, 부모님 속도 썩히고, 비겁하게 도망도 다니고, 인종차별적 발언조차 일삼지 않았나. 예수의 부활 사건을 소망한다는 것은 ‘때론 열정적이고, 때론 비겁하며, 때론 현실적’이었던 참사람 예수의 삶을 조심스레 뒤따라 가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불안하고 복잡한 현실을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더욱 큰 용기를 주리라. 예수의 제자이자 친구로서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신앙하고, 기적을 일구어 내야 할 존재이기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사순절기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며 고난을 감내하고 있는 우리의 수많은 이웃을 떠올려본다. 어떤 이슈거리나 사건이 아닌, 담담히 ‘Play On’되고 있는 그들의 삶에 주파수를 맞춘다면 여러 가지 이유로 고난 받고 있는 사람들이 비로소 나의 ‘이웃’으로 다가올 것이다. 고난 가운데 있었던 예수가 그리 했던 것처럼, 삶을 ‘플레이 온’ 할 이 땅의 모든 신실한 영혼들을 응원한다. 
 
※ 함께 보면 좋을 TV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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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2015.10.2.-11.29 JTBC방영, 12부작, 한국.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다르다.” -<송곳> 중에서
 
 누군가의 삶에 주파수를 맞춘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적극적으로 찾아가 ‘보고 듣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크레인이 무너지고 공장이 폐쇄된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스쳐지나가듯 접하게 되지만 내 이야기처럼 관심 갖기란 쉽지 않다. 비용절감 때문에 안전을 담보로 위험한 일터에서 노동하다 죽음으로 내몰리고, 직장에서 한순간에 내쳐져 내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그저 TV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너무 비장하거나, 너무 불쌍하거나, 너무 영웅적인’ 정형화된 이미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비극이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교회의 교우, 가족, 이웃의 구체적인 아픔이라는 사실이다.  
      
 조금 호흡을 길게 하면서 이 드라마를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 ‘Play On’에서처럼 다양한 삶의 면면을 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자칫 ‘노동자’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시각을 선물해주기도 하고, 직장 내에서 뭔가 답답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겐 말로 표현 못할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도 한다. 또한 덤으로 드라마<송곳>에는 매회 깨알 같은 ‘노동법’ 강의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실용적이다. 
 우리 서 있는 곳이 비록 조금 다르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같은 풍경을 바라볼 순 없을까.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국가적으로는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 비리 사건으로 구속되었습니다. 아직 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은 이 전 대통령의 각종 불법적 치부, 거짓말, 부정과 실정, 퇴임 후 편안하게 지내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모든 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죗값을 받도록 하나님의 정의를 세워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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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24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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